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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yechankim
어바웃 타임의 철학적 문제: 자아 동일성 문제와 타임머신, 순간이동 본문
0. 들어가기 : Tim Lake는 어리석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시간여행과 사건 조작에 대한 철학적 고찰, 그리고 개별성과 동일자 문제를 탐구하고자 한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 Tim Lake는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이 능력을 가지고 사소한 사건부터 중대한 사건까지 시간을 되돌려 어떤 의미에서 사건 조작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한 삶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인상들을 주로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 나는 이와는 별개로 시간여행을 통한 사건 조작이 나로 하여금 불러일으키는 '무엇인가' 심리적인 불쾌감, 이질감의 인상에 주목하게 됐다. 내가 받은 이 인상들의 점층적인 흐름을 조금 말로 풀자면, 처음에 다음과 같은 사소한 사건에서는 아직 크게 '무엇'을 느끼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친구 harry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극 작가인 harry가 힘들게 쓴 극을 주연배우가 대사 암기 이슈로 망쳐버리자 시간여행으로 되돌아가 주연배우를 도와서 극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한 사건이다. 근데 어떤 날은 그의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자 교통사고 전 시점으로 되돌아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여동생을 구하게 된다. 나는 여기서부터 그 불쾌한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 다음에 그가 과거로 이동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이 '무엇'이 무엇인지 직관이 더 진하게 형성됐다.
그 다음으로 이 느낌을 하나씩 잡아가 보았는데, 제일 먼저 주인공의 선택이 낳는 의미에 대한 회의적인 비판의식이 드는 것으로부터 이 직관을 명료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그에게 시간여행으로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조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캐묻고 싶었다. 아마 그는 크게 보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만약 그것이 행복이라 한다면 행복을 위해서 사건을 조작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가 가진 이러한 목적의식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 아닌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의 피상적인 목적에 대한 추구라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더 중요하고 목적의 목적이 되는 높은 수준의 목적, 이 목적으로서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미는 사건 조작의 행복이나 윤리적 가치와 같은 가치의 측면과는 별개이자 그 이전의 것으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따라서 조작이라는 것이 결국 만들어내는 현상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부터 얘기해야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한 얘기를 비롯한 다른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의미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다시 되돌려서 다른 사건으로 내가 인도, 유도하는 것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너무 부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는 나같으면 조작된 세계에 대해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의 '무엇'을 단순히 부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으로 규정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것 같다. 자연적이라는 추상어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 이전에 자연적 현상과 대비되는 이미 넓은 의미에서의 부자연적인 모든 현상들에 대해 이런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것으로 느끼는 것인가?
1.'무엇'의 구체화: 같은 것과 다른 것
나는 그 이유를 조작된 세계에서의 나 이외의 모든 것(이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단어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사물까지도 지칭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이 조작이 가해지지 않았던 원상의 세계의 모든것과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느낌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본을 성공적으로 암기해서 훌륭한 연기를 내보인 주연배우는 대본을 망친 원래의 주연배우와 다른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 여동생은 교통사고를 당한 여동생과 다른 것이다.*** 난 다르다고 느낀다. 이제 직관의 영역에 있는 이 느낌을 객관적 검증의 대상으로 놓고 보편적인 상위의 원리를 향해 더듬어 나간다면 꽤 괜찮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는 어떤 시점ㅡ물론 시간은 정확히는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통상적인 의미에서, 아니면 주인공의 관성계에서의 우주적 시간에서의 시점ㅡt = t_1에서 t = t_0로 시간여행으로 되돌아갔다고 가정해 보자. (∀ t_2>t_0) 원상세계와 조작세계를 t = t_2 시점에서 비교한다고 했을 때, 시간여행을 감행한 나를 제외한 모든 외부의 것들은 서로 다르다. 사실 t_2의 정확한 범위, t_1과 t_0사이의 대소관계와 관련해서 결정론을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에 따라 가정을 달리 해야 하기는 하다. 심지어 결정론을 상정했을 때에 원상세계와 조작세계간의 구분 자체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논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점들은 뒤의 문제로 살짝 미루어 두고자 한다.
그렇다면 다른 것과 같은 것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본질에 대한 설명을 각각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질문은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도 나왔던 주제인데,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너 순간이동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앎?",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거 시공간 접는 거 아님?", 아마 4차원의 공간에서 3차원의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 그거 말고 그 순간이동시키고자 하는 물질의 모든 것을 아예 복제해서 없애고, 순간이동시키고자 하는 위치에 복제한 것을 그대로 생성하면 된다고 함." 두 방법 모두 한번쯤은 지나가다 접했던 얘기였다. 다만, 그것이 진정 순간이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바웃타임을 보고 '무엇'에 대한 직관이 좀 세게 잡혀있는 상태에서 이 얘기를 듣다 보니까 결국 이 순간이동에 대한 대화가 곧 '무엇'에 대한 얘기, 즉 같은 것인지에 대한 논제와 맞닿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i.e. 시간을 되돌려서 마주하게 되는 조작세계의 나 이외의 모든 것들과 원상세계의 그것들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똑같은 것을 이곳에서 오려두기ctrl+x하고 저곳에다가 붙여넣기ctrl+v를 했을때 서로 같은 것인지에 대한 얘기와 상당 부분 겹쳐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한 사물을 하나의 특정한 개별 사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원리인 개별화의 원리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분리와 개별화는 모든 인간에 있어 삶의 첫 걸음인 특정 유아 시기(생후 6~24개월)에 나타나는 개념이기도 하다. 유아 발달 시기를 연구한 마가렛 말러에 의하면 이 시기에 유아는 엄마와 자기 자신, 더 나아가 대상과 자기 자신의 분리와 개별화를 통해서 자기 독립과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발견해 나간다고 한다. 분리와 개별화는 유아기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현상이자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다 인간의 본능에 가장 가까운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유아 시기의 이 현상에 대해 질적 연구를 해 나간다면 개별화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분리와 개별화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왜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이유, 동기를 묻는 의문이나, '세상에 그것이 인간과는 독립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정신에 종속적인 개념일 뿐인가?'와 같은 '개념'에 대한 의문이 드는데, 이 의문들은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와 동기를 묻거나 '개념'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의문이다. 따라서 유아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분리와 개별화를 분석해 이 의문들을 해결해나간다면 개별화의 원리와 인간 정신의 관계를 비롯한 어떤 중요한 통찰이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는 얘기이다.
개별화의 원리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중 하나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 있다. 하지만 그의 개별 사물(실체)의 구성에 대한 질료/형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 같다. 형상을 갖기 전의 질료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우리는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질료와 시공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리하셨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2. 대담한 시도: 인식주체 중심 시공간적 연속성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나는 앞서 얘기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이 한 사물을 하나의 특정한 개별 사물로 만드는 원리, 즉 n개의 개체를 비교해서 동일자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필요조건으로서 인식주체 중심의 시공간적 연속성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나는 어떤 것들이 동일자인지에 대한 진리값은 진리값을 판단하는 인식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인식 주체의 시공간 좌표계를 기준으로 외부의 것들의 시공간적 연속성 만족 여부를 결정한다. 즉, 시공간적 연속성에 대한 지식은 인식주체에게 상대적이기 때문에 동일자인지에 대한 진리값 또한 인식주체 중심이라는 것이다. 한편, 인식 주체는 항상 공간 좌표계에서는 원점을, 시간 좌표계에서는 직선상으로 연속성이 보장된다. 따라서 어떤 인식주체에게 자기 자신이 동일자인지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해볼 때,ㅡ동일자에 대한 다른 필요조건들도 있겠지만ㅡ적어도 시공간적 연속성의 조건에는 위배되지 않는다. 즉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동일하다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할 수 있다. 집에 있던 나와 비엔나 커피하우스에 간 나는 동일하다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할 수 있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주체에 대해 주인공은ㅡ그의 시공간 좌표계를 기준으로ㅡ시간에 대해 연속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한편, 주인공에게 비춰지는 외부의 모든 것들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시간에 대해 불연속이기 때문에 동일자가 아니다. 오려두기-붙여넣기를 이용한 외부의 어떤 것의 순간이동은 인식주체의 공간 좌표계에 대해 불연속이기 때문에 어떤 한 인식주체에 대해 동일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려두기-붙여넣기가 아닌 다른 어떤 방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외부 사물의 순간이동은 동일자가 아니다.
조금 더 극단적인 예시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상당히 재밌다. 예를 들어, 나랑 A라는 사물이 있다고 하자. A는 나를 기준으로ㅡ조금의 오차도 없이 아주 정확하게(입실론 델타 논법으로 호소력을 갖출 수 있을 듯)ㅡ북쪽으로 1m 떨어져 있다. 그리고, 어떤 시점 t_0에서 나와 A를 동시에 동쪽으로 1m의 위치에 순간이동시켰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나와 A간의 공간적인 관계는 뒤틀리지 않은 채로ㅡ공간적인 연속성이 보장된 채로ㅡ유지되기 때문에 '나'라는 인식주체에 있어서 A는 동일자이다. 반대로 나와 A를 제외한 모든 것들, 예컨대 옆에 있던 책상이나 연필들은 나의 공간 좌표계에서 불연속이기 때문에 모두 아예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0. 나오기
이처럼 동일자 문제를 명제로 바라보고 이 명제의 진리값을 인식주체 중심으로 설명하는 나의 시도는 나로 하여금 인식론의 인식주체 중심 맥락주의, 그리고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에 대한 인식론적 다원주의, 상대주의적 해석 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인식주체 중심이라는 설정은 어떤 의미에서 좀전에 던져놨던 분리와 개별화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분리와 개별화의 목적은 결국 유아가 '나'라는 인식주체를 알아가기 위한 것이다. 타자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것은 물론, 타자와 타자를 개별화함도 결국 종국에는 나를 더욱 더 잘 알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하다. 따라서 무엇을 무엇으로 만들어주는 기준도 결국 나 중심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내가 아니면 개별화의 목적 자체가 사라지고, 한편으론 기준이 더욱 불분명해지는 절망감에 빠져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시도를 생각할 수 있었던 발판은 지금껏 내가 접해왔던 대단한 철학자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뛰어난 사유 방식들을 계속 고민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역시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판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꽤 나의 시도가 흥미롭다고 느껴진다.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의 고도화는 인식론을 비롯한 많은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없이는 인공지능을 적절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먼 훗날에는ㅡ여전히 불가능할수도 있지만ㅡ과학기술의 발전이 타임머신,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 날이 온다면 이것에 대해 인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고, 꽤 재밌고 중요한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꼭 그 뿐만이 아니더라도 이것을 함축하는 보편자와 개별자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도 깊은 통찰을 다루는 논쟁임을, 그리고 정말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서 재밌고 유익했다.
과연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은 나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어보고 나서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다른 세상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너 진짜 이래도 의미부여할 수 있겠냐? 나는 아무래도 어찌됐든 모든 것들의 시공간적 연속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택할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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